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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공장 4개월 스펙타클 스토리 (Feat. Who am I? 인종차별?!) > 자유게시판 & Q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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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공장 4개월 스펙타클 스토리 (Feat. Who am I?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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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evinKang (203.♡.188.179) 작성일2019-03-22 12:04 조회5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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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24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시절, 여러 나라 친구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 from 네이버 클라우드)


(Feat. Who am I? 인종차별?!)


안녕하세요. 저번에 글을 쓴 이후로 5일 정도만에 다시 찾아 뵙는 것 같습니다.

저는 Korean Hippie, 코피라고 합니다.

오늘은 예전 제 어린 시절 처음 겪었던 인종차별에 대해서 얘기하며 그리고 제 성격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도 하나의 스토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그 내용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진 2. 멜버른 소버린 힐, 예전 19세기 호주의 골드러시를 재현한 마을)

먼저 글에 앞서 제 성격을 설명하자면, 제가 제 자신을 생각해도 정말 특이한 성격 같습니다.

저는 평소에 누구보다도 이타적인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이타적이라고 얘기한다고 웃으실 수 있겠지만 :) 100% 저를 겪어본 주변 지인들 친구들은 제 성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카불쳐에서 저와 같이 사는 한국 동생이 어느 날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오빠는 무슨 마더테레사 같은 사람이에요~”라고, :D

그 얘기 들었을 때 내가 한 행동들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 매우 좋더군요. ㅋㅋㅋ

(사진 3. 케언즈 해안가, 케언즈가 내 호주 여행지 중에 가장 임팩트가 컸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제가 돈을 벌면 주변 친구 지인들에게 쓰는 돈이 최소 30% 이상입니다. 아마도 50%이상일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밥을 사거나 술을 사거나 뭐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겠죠.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잘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저에게 말합니다. 참 미련하고 돈 관리를 못한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큰 돈을 모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변 사람들을 먼저 생각해 그 사람들이 행복해진 다음에 제 것을 챙기려고 하다 망했죠.

(사진 4. 한국 노량진 수산시장 가는 길 철도 사진, 뜬금없지만 회가 먹고 싶다.)

뭐 제 자랑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 이것과는 정말 대조되게도 저는 또 한편으로는 정말 큰 악마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누군가가 저에게 공격적인 모션을 취할 때, 언행이나 제스처 그리고 그 사람의 의도가 부정적이라고 판단이 되었을 시에는, 그 누구보다도 악마 같은 사람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 한번은 제가 1차선에서 우회전을 하려고 깜빡이를 키고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어떤 택시 기사가 저 뒤에서부터 뜬금없이 풀 악셀을 밟으며 제가 못 들어가게 막아버리더라구요. ㅎㅎ 한국에서 운전 해보신 분들은 아시죠? 택시 기사들 중 가끔 그냥 자기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ㅋㅋㅋ

그 때 제가 한 행동은 머리속에서 생각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바로 창문을 내리고 그 택시기사에게 차량으로 붙으며 위협을 가한 후 제가 생각 할 수 있는 모든 쌍스러운 욕들을 샤우팅 하며 몇 분간 차로 옆에서 운전하며 보복 운전을 하였죠. 그 택시 기사는 창문을 끝까지 내리지 않았고 저와 눈을 맞추지도 못하였습니다.

매우 잘못된 방식의 대응 방법 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냥 머리속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저 사람이 나를 공격하였다. 그럼 난 당신에게 더 큰 공격을 가하겠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죠.

(사진 5. 노량진 수산시장, 그냥 회가 먹고 싶었다...)

그리고 제가 항상 누군가가 이 말을 하였을 때 정정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저는 반문합니다.

“왜 그 더러운 똥을 피하는 거야? 더러우면 치워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요.

이 얘기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아시나요? 히틀러는 저런 마인드로 삶을 살았던 사람 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개인적인 생각 하나로 유대인들이 똥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을 학살하였던 것이죠. 잘못된 사고 방식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그리고 그런 사람이 힘을 가졌을 때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 되는 것이죠.

다행히도 저는 항상 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어떤 행동이 법적인 부분이나 도덕적인 부분에서, 예를 들어 살인 강간 등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잘못된 행동들은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죠. 하지만 그런 정도가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저에게 공격적인 제스처를 취한다면 저는 그보다 큰 제스처로 돌려주게 되는 것이죠.

(사진 6. 좌측 중간 코피, 고등학교 국제 학교 시절)

서론이 매우 길었습니다만 오늘의 이야기를 하기 전 필요 한 얘기인 것 같아 글을 작성합니다.

어제 밤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는 왜 평소에는 누구보다 이타적인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악마 같은 사람일까?”

음 기억을 되짚어보니 초등학교 4학년 때 넘어갔었던 새로운 세상, 제 가치관과 여러 생각들이 아직 미숙한 그 나이에, 중국에 넘어가 국제학교를 들어갔었고, 저에게는 매우 혼돈의 카오스 같은 곳 이였습니다.

저는 하루에 3개의 언어를 모두 돌아가며 듣고 쓰고 배워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면 미국 교육 방식으로 수업을 들었으며, 친구들과 영어로 소통을 하여야 하였고,

오후 3시에 학교에서 끝나면 집에 오는 길에는 20년 전 그리고 아주 시골의 중국에서 중국인들과 섞여 생존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으며,

그 뒤 전 집에 돌아오면 부모님들과 한국어로 다시 소통을 하여야 했습니다. 예전에는 마냥 3개 국어를 할 수 있었다는 환경이 정말 좋은 환경이고, 누구나 부러워할 환경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오늘 제 과거를 되짚어보니 전 매우 불행하고 불쌍한 어린 아이, 그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치는 아이 였었습니다.

(사진 7. KIA, 쿤밍 국제학교, 그냥 로고다. 그렇다.)

그리고 국제 학교에서 인종 차별이라는 게 무엇인지 몸으로 직접 배웠습니다. 제가 아직 영어를 잘 하지 못하던 어느 날, 미국 애들이 농구를 하려고 다들 공을 챙겨 코트로 가는 길에, 저도 그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그들의 뒤를 무작정 따라가 그 중 리더 ‘피터’라는 친구에게 소통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손짓 발짓을 하며 같이 농구를 하고 싶다고 얘기하였죠.

그 때 그 친구가 뭐라고 얘기를 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 무리에서 같이 놀 수가 없다고 얘기를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뒤에 저는 화가 나 바로 그 친구 얼굴에 아주 소중하게 모은 큰 가래침을 뱉었습니다. 그러고 그 친구는 바로 교장실로 갔었고 그 뒤 저도 바로 교장실로 끌려갔죠.

제가 언어가 부족하다 보니 미국 교장 선생님은 일방적으로 그 친구의 얘기만 듣게 되었고, 저를 아주 크게 혼냈었죠. 저 그렇게 혼나고 혼자 학교 화장실로 뛰어가 한두시간동안 울었습니다. 정말 언어가 안되니 속상하더군요.

아마 변명으로 제 자신을 위로하고자 이 얘기를 꺼낸 것 같습니다. 저는 길거리에서 중국 아이들로부터 둘러 쌓여 위협을 받은 적도 있었으며, 어린 시절 그렇게 보낸 제 삶은 제 이상한 성격이 이렇게 표출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내가 공격당하였을 때 바보같이 가만히 있으면 그들에게 먹힌다. 내가 받은 공격은 그들에게 두배로 갚아야 그들이 날 쉽게 보지 못한다.” 라는 마인드로 살아왔던 거죠.

(사진 8. 한국 이화 벽화 마을, 한국에도 걸어다니기 좋은 곳들이 참 많다.)

얼마 전 War**** 커뮤니티에서도 저에게 공격적인 제스처를 취하신 분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그때 또한 저는 비슷한 방식으로 대처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대처를 하고 나서 내가 또 멍청한 행동을 하였구나 라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더군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받아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고, 안 그렇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ㅎㅎㅎ

아무튼 그 감정적인 대처에서는 죄송합니다.

그러고 초등학교 5학년 즈음 국제 학교에서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방출되었습니다. 사유는 “언어를 잘 하지 못하고 적응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영어를 잘 하는 친구들만 받겠다” 였었죠. 사실은 그 학교에 한국인들 비중이 너무 높아지다 보니 내쫓은 겁니다. 그게 미국인들 마인드입니다. 전 미국인들을 아직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베이스에 깔린 그 추악한 모습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죠.

미국(서구권) 학교는 초등학교때 수업을 놀면서 가르칩니다. 어릴 때 밖에서 많이 뛰어놀고 활동적, 창의력, 예술 등 여러 오감을 깨우치는 수업을 더 중요시 여겨 가르치죠. 중학교에 올라가면 조금 더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여 주고, 고등학교 때 자기들이 하고 싶은 꿈을 찾아 열심히 공부하는 그런 교육 환경을 구축하였죠.

그래서 미국 애들(서구권의 많은 나라들)은 대학교에 가면 그렇게도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왜냐하면 10대 시절에 이미 자기가 하고 싶은 꿈을 발견하였기에 그들은 열심히 공부를 해야 되는 동기 부여가 만들어 진 것이죠.

뭐 이 교육 방식 자체는 매우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지향해야 할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하지만 문제는 제 어린 그 시절 이였습니다. 저런 방식으로 수업을 가르치는데 제가 일년안에 영어를 원어민처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냥 타국민에 대한 배려심이 1도 없었던 것이죠.

(사진 9. 중국 초등학생들의 단체 사진 그리고 빨간 스카프)

그 이후 부모님들이 어렵게 고르고 골라 찾은 중국 사립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거죠. 미국과 중국, 전 세계의 극과 극인 교육 방식과 문화, 자본주의의 끝판왕과 공산주의의 끝판왕을, 전 동 시대에 배웠습니다. 중국은 어린 초등학교때부터 이미 공화사상을 머리속에 세뇌시키며 배웁니다.

처음에 학교에 갔었을 때, 부모님들은 학교 관계자들과 매우 큰 씨름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국은 초등학교부터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교복을 입어야 하며, 제일 중요한 빨간 스카프, 홍린징 이라는 것을 항상 착용하여야 하죠. 하지만 부모님들은 저희가(저와 제 3살 어린 동생입니다.) 어릴 때부터 중국 학교에서 공산주의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시기 싫어하셨고, 결국은 학교와의 협상에서 승리를 쟁취하여 저희는 자유롭게 사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게 되었죠.

(사진 10. 답은 1번이다. 빨간 스카프는 중국에서 아주 기본적인 학교 복장이다. 출처 - 차이나랩)

저는 그 뒤 초등학교 6학년을 졸업할 때까지 큰 사고 없이, 아무 문제없이 조용히 학교를 다녔습니다. 제 담임 선생님은 젊은 초보였었고 저를 어떻게 교육하여야 하는지 방식을 몰랐습니다. 저 또한 학교의 수업에는 관심이 1도 없었으며 매일 집에서 다양한 한국 책들을 가방 가득 챙겨 수업 시간 휴식 시간 가리지 않고 미친듯이 책만 읽었었죠. 그 뒤에 집에 와서도 하루 종일 책만 봤었습니다. 아마 그 2여년간 읽은 책들은 최소 몇천권은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중학교로 입학하게 됩니다. 부모님은 제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바뀌는 것이 걱정되어 방학 기간동안 태권도 야외 스포츠 등 많은 활동적인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셨으며, 사실 말이 지원이지 그냥 강압적이었습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님의 인형이 되었죠. ㅋㅋㅋ…

방학 이후 새로운 중학교에서 전 또 다른 인물로 살게 됩니다. 방학 기간동안 저도 태권도를 배우며 자신감이 붙었고, 갑작스럽게 커진 키와 어느정도 초등학생의 티가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 저는 어린 마음으로 다짐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새로운 학교에 가서는 나는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고 앞으로는 끌려 다니는 인생이 아닌 내가 주도하는 인생을 만들거야!”라고 어렴풋이 다짐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학교에 들어가 친구들도 적극적으로 사귀며 반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문제는 또 발생됩니다. 중학교에서 소위 말하는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일진 무리들이 저를 주시하기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으나 그 시절 제 키는 주변 동년배들에 비해 많이 큰 편이였고, 또한 태권도를 열심히 배우다 보니 그들이 방식을 바꾸게 되었죠. 자기 편으로 만드는 방법으로요…

어느 날 그들이 나에게 담배를 피냐고 물어봤었고, 저는 지지 않기 위해서 핀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때부터 제 폐는 썩어 가기 시작했죠. 제 폐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ㅋㅋㅋ… 그 뒤에는 뭐 그들과 친해지고 어울리고 밖에 나가 술 먹으러 다니는 그런 양아치 같은 삶이 시작된 거죠.

(사진 11. 남산골 한옥마을, 서울에만 해도 정말 멋있는 곳들이 많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전 어머니와 참 많이 싸웠습니다. 정말 잘못을 많이 저질렀으며 어머니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부모님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그 혼돈의 정글에 던져 놓고, 정말 좋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게 만든 부모님들의 책임도 있다고요.

저는 살아남기 위해서 담배를 피기 시작하였고, 술을 먹었으며, 일진들과 어울렸습니다. 제가 피식자의 입장에서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제가 포식자가 되어야 했죠. 20년 전 00년도 초반에 쿤밍이라는 지역에는 한국인들이 다 합쳐 50명도 살지 않았던 시골 이였습니다. 모든 중국인들은 우리를 원숭이 보듯이 신기한 모습으로 바라보았고, 그 중 나쁜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었던 것이죠.

그래서 제 성격이 이렇게 극과 극으로 뒤틀린 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 봅니다. 뭐 변명일 수도 있고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게 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변명거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사진 12. 남산골 한옥마을, 우리나라 한옥의 멋, 한옥은 과학이다.)

하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줄여 나가고 있으며 항상 머리속에 하지 않도록 노력 중에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으며 사업을 항상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 보면 이 성격은 매우 좋지 않은 모습으로 저에게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사실 저는 오늘 이 이야기 말고 여러분들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수향 쉐어하우스 투자 유치가 다 되고, 준비가 차근 차근 되어가고 있으며, 워홀러 여러분들에게 힘든 호주 생활 와중에도 알차고 재미있는 쉐어하우스를 공개하는 그런 소식을 말이죠.

그리고 최근 사업계획서를 모든 사장님들께 다 뿌렸으며 저는 좋은 반응을 기대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소수의 인원만 회신을 주더군요. 어제 오후에는 정말 맨붕과 스트레스, 그리고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하지만 저녁에 제 화장품 동업자 친구와 얘기를 하여 200만원을 끌고 오게 되었고, 얼추 이것 저것 조금씩 모으다 보니 약 50% 조금 넘는 금액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제 주변 친구 지인들에게 다시 처음부터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으로 준비를 하고자 합니다.

그래도 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정말 큰 장점 중 또 다른 한가지는 긍정적, 낙천적이라는 것입니다. 사업 실패 후 돈을 많이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찾아다닌답니다. 그리고 이번에 호주에서 진행하고 싶은 사업은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다 합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포기를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하여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고 그 과정들은 힘들지만 즐거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워홀러 친구분들이 저에게 응원을 해주신다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난과 비평 또한 저에게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겠지만, 저 또한 사람인지라 칭찬을 듣게 된다면 힘이 많이 나고 더더욱 열심히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번엔 또 새로운 재미나고 알찬 에피소드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지루하지만 코피의 어린 삶에 대한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D


(사진 13. 좌측 코피, 마이 베스트 프렌드와 함께, C u next time with new epis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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