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는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국가다. 말레이인과 중국인, 인도인이 뒤섞여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환경미화원이나 가사도우미로 고용된 인도네시아인, 미얀마인의 숫자도 상당하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공식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60%가량이 말레이인이고 중국인과 인도인이 각각 24%, 8%라고 한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다 보면 과연 이 통계가 정확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실제 생활 속에서 접하는 중국인과 인도인의 비율이 그보다 훨씬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9월 초는 이슬람의 단식 월인 라마단이었다. 이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말레이계 음식점이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러 중국계 식당에 갔다. 그런데 그곳 종업원들은 자연스럽게 중국어로 응대했고 영어도 말레이어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내에 말레이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 있다는 건 뜻밖이었다. 메뉴판도 중국어뿐이어서 중국어를 못하는 사람은 음식을 주문하기도 쉽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내에서 중국인이 많이 모이는 곳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차이나타운 같은 특정한 밀집 지역뿐만 아니라 그 외의 곳곳에서 중국인들은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인이 전체 인구의 24%라는 통계가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중국계 사회가 곳곳에 형성돼 있다. 말레이시아 내 중국인들은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말레이시아가 독립되면서부터 지금까지 항상 경제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말레이계 사람들과 융화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고 한다. 즉 중국인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기반을 튼튼히 다져 놓았기 때문에 오히려 원주민인 말레이인들이 비교열위에 놓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길에 흔히 보이는 고급 승용차들은 대부분 중국인의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업무상 대화를 할 때도 먼저 중국어로 말을 하고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그때서야 영어를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업무에서 말레이어가 쓰이는 비율은 0%에 가깝다.



반면 말레이시아 내 인도인의 생활은 중국계와는 정반대다. 경제 여건이 말레이 사람들보다 더 열악하며,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쁘다. ‘인도인이 운전하는 택시는 절대 타지 말라’는 말은 말레이시아에서는 불문율에 가깝다. 심지어 같은 인도인들조차 인도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는 꺼린다. 인도인에 대한 이처럼 나쁜 인식은 그들의 범죄율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절반 이상이 인도인들에 의해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도인의 범죄율이 유독 높은 원인 중 하나로 ‘부미푸트라(Bumi Putra, 말레이 우대정책)’를 들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타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법률이 있는데 바로 ‘부미푸트라’다. 출산, 교육, 취업,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말레이계 사람을 우대하는 법이다. 중국인에게 경제적으로 뒤처지는 말레이계를 지원하기 위한 이 정책은 인도계의 소외라는 예상 밖의 부작용을 유발했다. 중국인은 경제적으로 강하고 말레이인은 정치적으로 강하지만 인도인은 경제 형편도 어려운데 국가의 지원마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부족한 것이 많으면 사회에 불만이 쌓이고 결국 범죄로 연결되기 쉬운 것은 당연한 이치다. 말레이시아 내 인도인들은 사회의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오늘도 범죄로 내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