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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란 작성일2011-06-08 07:50 조회5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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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폭력배 서북청년단의 만행

서북 청년단

개신교 조직폭력배로
해방이후 북한에서 쫒겨온 감리교가 주축이되고
남한의 개신교가 가담하고 YMCA 에서 창단식을 가진
전국을 무대로한 거대 폭력조직으로 정치적 태러행위를 일삼고
김구 암살 제주 4.3사태 3만명 살해 여순사태 학살행위등
잔인한 태러행위를 일삼고 방화 강도 절도 등등의 패륜적 행위를 하였고
이승만 초상화와 태극기를 가지고 다니며 강매를 하였고 이에 불응하면
공산당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고문 폭행 살해등을 일삼고
가족들을 상대로 협박 금품 갈취 성상납 강제결혼 등을 하였다.

박정희의 5.16 군사 혁명 이후 해체 되어
전국 각처에 교회를 만들고 목회활동을 하였고
그들은 자신을 반공 용사라 칭하고
사람 죽인일을 공산당 때려 잡는 일로 미화시키고 목회 활동을 하였다.

지금 현재는 현직에서 물러 나고 서북노회라는 조직을 통하여
또는 평양노회에도 조금 활동하고 있어 배후에서 압력을 행사하고
우리나라 개신교를 배후에서 조정을하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개신교인들은 정말 제주도민에게 백배 사죄해도 모자란다.
기독교의 만행이 중세시대 마녀사냥이나 끔찍한 고문,
청교도들의 인디언학살만 알고계신 분들이 계신데
바로 이나라 이땅에서도 저질러졌다.

제주 4.3사태가 그것이다.
해방후 1947년에서 근 7년간 지속된 학살로
제주도민의 1/3가량인 9만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제주도에는 같은날 제사를 드리는 분들이 많다.

전국 각도의
평균 개신교인구 비율이 평균 20% 가량 되는데
제주도의 개신교인구가
1989년 기준으로 5%인 이유는 다 역사적 이유가 있다.
지금도 제주도의 나이드신 할머니들은
기독교인이라면 치를 떠는 분들이 많다.

제주 4.3사태라 하면
보통 해방후 극심한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미군정이 제주도민을 학살한 사건이라고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같은 민족끼리 이념대립으로 같은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그럼 이들을 학살한 주체가 누구일까?

바로 미국정부의 조정을 받고
미국 개신교교단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이
그당시 좌익의 여운형과 중도통일세력인 김구선생을 암살하고
독립운동한 민족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할려고 만든 단체가 서북청년단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서북청년단만큼 악마적인 단체도 없었다.
이들이 비공식단체이기 때문에 월급이 없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다녔다.

주로 군과 경찰을 따라다니며
빨갱이색출 작업을 벌이며 부녀자 강간,
이승만초상화나 태극기 강매, 반반한 여자는 자기 마누라로 삼고
자기 말을 안들으면 약탈과 살인을 밥먹듯이 한 단체다.

현대사의 대학살사건인
대구노동자파업, 거창학살사건, 여순반란사건,
보도연맹(좌익들에게 전향의 기회를 준다고 등록하게 한뒤 나중에 무참히 학살한 사건)등에
어김없이 나타나 양민을 학살한 자들이 바로 이 서북청년단이다.

이당시 좌익으로 몰려
서북청년단에게 사망한 국민만 20~30만명 가량 된다고 한다

서북청년단은 주로 이북의 주지나 개신교인들로 구성된
극우반공단체로 이북에 공산정권이 들어서
김일성이 토지를 무상분배하고 종교를 없애자 남하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제주 4,3사태때 한 행위는
히틀러의 제노사이드(인종청소)와 미국 개신교 극우단체인 kkk단의
흑인학살과는 비교도 할수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양민을 학살했다.

이들은 장모와 사위를 잡아놓고
옷을 벗긴뒤 공개로 성행위를 시키고,
죄없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애인에게 석방을 핑계로 강간을 하고,
아편을 먹고 환각상태로 부녀자 겁간을 자행했다.

이들이 개신교인였다는게 믿겨지지 않겠지만
이들 단체의 80~90%가량이 친일 개신교인들이었다

이승만 이후
친일파 처단에 실패하고
오히려 이들이 미국선교사들의 후원 아래 기득권에 편입되었다.
(주로 군과 경찰등에 많이 소속되었다)

이들이 기득권을 쥐고
반공을 국시로 내세워 그뒤 5.18민주화항쟁등에서
무고한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역사는 대충 아실 것이다.

야인시대란 드라마에 보면
김두환, 시나소리 이성순, 이화룡등 주먹세계를 멋있게 그리고 있는데
이들이 주로 노동자파업이나 좌익집회가 있는 곳이면
달려가 깽판을 치던 서북청년단 깡패들이었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한지 신이 우리민족을 배반했는지
이들이 주먹생활을 청산하고 선택한 직업이 바로 목사라는 것이다.
시라소니로 알려진 이성순도 서북청년단 간부였는데 목회자로 변신했다.

가끔 개독들이 안티보고 여긴 빨갱이 소굴인가라며
안티를 빨갱이로 자꾸 모는 것은 이런 목사들 세뇌를 받아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목사들이 박통과 전통 군사독재 세력의 폭압과
저임근에 신음하는 국민들이 마지막 안식처를 찾아 교회로 몰려들어
대형교회의 목사가 되니 참 신이 우리민족을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한기총은 이런 목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단체여서
그렇게 반공에 열을 올리고 국가보안법에도 민감한 것이다.

극우단체와 연합해
구국기도회를 주도한 김홍도 목사가
나를 모함하고 현정권이 빨갱이고 좌익세력이다 말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개신교인들은 이데올로기를 떠나
예수의 사랑을 믿는다면서 제주도민을 이렇게 학살한 역사에 대해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현재는 현직에서 물러 나고 서북 노회라는 조직을 통하여,
배후에서 압력을 행사하고 우리나라 개신교를 배후에서 조정하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게다가 친일은 좀 많은가?
금란교회’라는 교회의 명칭은 이화여대 총장이었던
김활란이 1957년 이화의 교직원과 학생들로 ‘금란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전도를 시작한데서 유래한다.

동년 7월 망우동(당시 망우리)에서 전도를 시작하여
복음의 씨를 뿌리기 시작했고, 이듬해 1958년 11월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 금란동산에서 창립예배를 드렸다.
15평의 천막교회를 짓고 10여명이 모여 하나님께 첫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이 금란교회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김활란(金活蘭)의
이름 첫 자와 끝 자의
‘金’과 ‘蘭’을 따서 금란교회(金蘭敎會)로 명명하였다.

입만 열면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순진한 여성들을 꼬드겨
위안부로 동원한 대표적인 친일 여성 김활란

<<개독 교회와 친일 반역자>>

<일제시대 위안부 사진-김활란은 순진한 처녀를 위안부로 끌고가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개신교는 한일 합방후

일제치하 초기에 3.1운동을 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데 앞장서고 주도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다가

일제의 거듭된 핍박과 회유에 굴복하고 친일파로 변절한다.

일제는 서북청년단의 전신이 되는

친일파로 변절한 그들의 편의를 봐주고 개신교는

북한지역에 교세를 넓히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리하여 일제때 고위 관직을 지낸

개신교 신자들이 다수 생기게 되는데 그들은 교인들에게는

교묘하게 신앙생활을 잘해서 물질 축복을 받았다고 허세를 부려

기복신앙의 초석으로 만들고 말았다.


행여나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서

목사는 하나님이 심판을 하니 교인들은 목사의 비판도 해서는 안되고,

목사가 죄를 지어도 그냥 가만히 놔두고 참으면

나중에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고 교인들에게 세뇌를 시켜

세월을 기다리는 동안 부와 명예를 높여왔다.

또한 2차대전에는

스스로 모금하여 전투기를 일제에 헌납,

신사참배와 황국군대 지원을 선동하였다.


일본 패망후,

북한 지역은 소련이 점령하여 공산권이

친일청산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개신교 신자는 신변에 위협을 받는다.

그들은 친일파에 지주에 예수쟁이로 목숨을 보장 받기 힘들게되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내려 온다.

이 친일파로 변절한 자들이 결성한 단체가 “서북청년단” 이다.

서북청년단의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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