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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편지 | 이화에 월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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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useonjae 작성일2014-12-23 10:29 조회1,2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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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주사,
이조 고종 재위 시 이 땅에 태어나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고 생업으로 삼으시며
일흔일곱 해를 사시다 삼십 이년 전 향천 하신 분.


관직은커녕 동네 이장일 한 번 해본 적 없으신 이분을
동네 사람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까지 김 주사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냥 김 씨라고 부르기엔 왠지 실례되는 것 같고 미안하여,
당시 면사무소의 부면장급인 주사로 우대하여
한두 사람 그렇게 부르던 것이
돌아가실 때까지 영원한 명예직 김 주사가 되었다고 한다.


정식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으나 한글 사용에 불편이 없으셨고
웬만한 한자 정도는 읽고 쓰는 수준인데,
특히 암기력이 뛰어나서 한 번 들은 것은
토씨하나 흐림이 없을 정도이니 이분의 실력을 가히 알만하다.


농사일 외에 이분이 즐기시는 일이 하나 있는데
약주를 좋아하시고 시조 부르기를 좋아하시는 거다.
약주 드시고 취기가 적당하면
긴 수염 두어 번 쓰다듬어 내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시조 한수 읊으시는데
이 소리가 토담 넘어 앞산마루에서 휘감김을 하는 듯하였다.


식구들 이럴 땐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히 움직이는데 신발 끄는 것도 안 된다.
두 손에 고무신 쥐고 싸리문 밖으로 나오면
우물에서 물 깃던 아낙네 귀 기울여 듣기 예사였다.


평시엔 조용하고 오가는 길에 마주치는 이 인사라도 할라치면,
어떤 사람이건 반드시 경어로 답례하시고
길 트여 주심을 잊지 않으셨다.
혹여 남루한 걸인이 구걸이라도 할라치면
결코 하대하지 않으시고,
소반 상에 밥 차려 드리라고 하여
오히려 얻어먹는 자가 당황하기도 하였다.



이분에게도 한 가지 흠이 있었으니 약주를 너무 좋아하시는 거다.
열흘이 멀다하고 찾아오는 벗들과 건넛마을 주막집에서 한잔 드시다
귀가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자식, 손자들 동구 밖까지 나가
기다리다 모셔오곤 하였는데,
양옆에 자식들 부축 받으시는 김 주사 어른,
이럴 때면 꼭 시조 한 수 하신다.


한가할 때 손님이 오셔서 집에서 술상이 차려지고
술잔이 몇 순배 오가면 으레,
시조경연이 벌어지곤 하였는데
언제나 장원은 김 주사이시다.
감히 인근에 이분을 따를 자 없는 듯하다.


수십 편의 시조를 암기는 물론, 작자, 년대, 배경까지 둘둘 꿰고 있었으며
부드럽게 시작하여 회오리처럼 쓸어 올리고 뚝 꺾이면서 변화를 주는
김 주사님의 시조창은 정통이었으며 지금도 아련한 추억이다.


여간해서 같은 곡을 부르시지는 않는데 즐겨 부르시던 시조가
이조년의 ‘이화에 월백하고’와 김상헌님의 ‘가노라 삼각산아’이시다.
‘이화에 월백하고’를 부를 때는 어떤 사련의 정이 솟구치고
‘가노라 삼각산아’에서는 사나이 굳은 충절을 나타내시기라도 하는 듯
두루마기 자락을 ‘휙’ 젖히기까지 하셨다.


이렇게 김 주사님이 시조를 잘하게 된 이유가 있었으니
첫째는 소질이 있으셨다.
둘째는 시조수집이다.


김 주사에게 초등학교에 다니는 넷째 아들이 있었는데
꽤나 공부를 잘하여 은근히 자랑스러운데
기특하게도 학교에서 매번 쏙쏙 시조를 배워다 알려준다.


시조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담임선생님이
이 넷째 아들에게 시조를 가르쳐 주셨는데,
이 시조는 그날 저녁이면
김 주사에게 어김없이 넘겨지고
김 주사 어른 참 열심히 시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
'풍년초' 봉지 담뱃갑 헛되이 버리지 않고 잘 모아 두었다가
이렇게 넷째가 전리품처럼 가져오는
신선한 재료를 몽당연필로 꼭꼭 눌러 쓰셨다.
시조집은 아랫목 머리맡에 모셔지는데
빛바랜 담배종이 날로 두터워지는 기쁨은
부자간의 보람이었다.


저녁에 도착한 따끈한 소재는
이튿날 아침이면 김 주사 어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데
얼핏 들어도 한자 틀림없다.


김 주사 일흔 되던 해,
늦게 두어 걱정 많던 넷째아들 장가보내 살림 내어 놓으니
부자간의 물리적 공간이 너무 커 시조 소리 듣기 어려워지는데
무심한 세월은 김 주사를 김 노인으로 만들어 가고 더구나


지난해 아내마저 저 세상 사람 되어
자식, 손자 보고 싶다고 인편에 연락 주신다.
넷째아들 술사고 안주 장만하여 고향집에 들어서며
“아버지” 부르니 누워있던 아버지 반색을 하신다.


따뜻하게 덥혀서 약주 올리는데
앙상한 아버지의 손에 들린 술잔이 슬프게 다가온다.
넷째아들 가슴이 아파 “아버지 옛날처럼 이화에 월백하고 한 번 하시죠.”하니
아버지 쓸쓸히 앞산만을 바라보신다.
앞산 참나무 가지에 감겨 되돌아오듯 하던 시조 소리가 그리우신가 보다.


"얘야, 이제는 어지간히 때가 온 것 같구나.
시조도 늙어서…."


그날 아버지의 시조는 듣지 못했지만
유언이 되고만 마지막 말씀을 주셨다.
네가 공부 잘해서 착해서 참 자랑스러웠다고.
시조 참 좋았다고….
자식들 공부 잘 시켜서
너희로 하여금 가문을 일으키고 명문가로 발돋움하라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그것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되었으니….



아버지!
넷째도 아버지 그때처럼 흰머리 많고
아버지처럼 자식 손자들 그리며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못난 자식 믿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해 주셔서.


하늘, 자연, 사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공부를 하는
저희들 잘 지켜봐 주시고요,
우리들의 헌정각에 부모님 모시고 있습니다.
내일 새벽에도 향 사르고 정화수 올릴게요.
맑은 두촌리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러 갑니다.
넷째 네는 아버지 별, 어머니 별,
이름은 ‘고은 별’을 가만히 올려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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