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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편지 | 성탄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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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useonjae 작성일2014-12-07 10:19 조회1,2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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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선물





'고맙다고 말하는 것 잊지 않기!'
수첩 한 귀퉁이에 적힌 글귀를 중얼거리며 읽어본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적어두고
기억해야 하는 모자란 인간이 나란 사람이다.


이런 내게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여덟 살이 되던 해 성탄 전야.
아빠는 전에 없이 성탄선물에 예쁜 케이크까지 준비해
가족 모두 모여 성탄 전야 예배를 드리자고 하셨다.


그 날 밤에는 예쁘장한 여자 손님이 초대되었다.
지금의 새어머니이시다.
참 고맙지 않은 일이었다.


어색함을 달래느라 성탄선물로 받은 어린이 기도집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보니
어느 페이지엔가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때 난 그 구절을 읽자마자 너무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린 나이에도 참 이해가 가질 않아 같은 구절을 읽고 또 읽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나머지 두 구절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항상 기뻐하라니….
무슨 기쁜 일이 있어야 기뻐하는 거지!
범사에 감사하란 말은 더더욱 이상하다.
아무렇지 않은 일에 어떻게 감사하라는 것인지???
더욱이 반갑지도 않은 손님과 함께 해야 하는 오늘 같은 밤에 말이다.


너무 이상해서 그 페이지를 넘기지도 못하고 뚫어져라 보고 있었더니,
속도 모르시는 아빠는 내가 그 구절이 좋아서 그런 줄 아셨던 모양이다.
우리 딸이 좋은 성경구절을 찾아냈으니 함께 봉독하는 게 좋겠다며
그 말씀을 소리 내어 읽으신다.
그리곤 다함께 눈을 감고
우리 모두 범사에 감사드리는 가족이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렸다.


내가 여덟 살이 되도록 언니와 내 곁엔 늘 엄마 대신 할머니가 계셨는데,
어린 내 기억속의 아빠는 늘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 주무시다가 토하시곤 했다.
그땐 너무 어려서,
세상의 모든 아빠는 원래 그렇게 늘 술을 먹고 토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린 두 딸과 함께 아내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술로 달래며 홀로 아파하시던 모습이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술을 마시고 토하는 아빠를 위해
세수 대야를 가져다 드리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내게 “고맙다.”고 하셨다.
고작 그것이 내가 어린 시절 익숙하게 들은 ‘고맙다’는 말의 전부였다.


암튼 그 이상한 성경 구절은 사는 동안 내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새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갈등할 때도,
나를 낳기만 하고 버린 친엄마를 원망하면서
또 한 편 그리워할 때도….


‘애증’이라는 감정은 내가 그 어려운 어휘를 습득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내 가슴속에 공기처럼 익숙하게 스며 있었다.
그 후로 갈등할 때마다,
그럴 때마다 난 이렇게 기도했다.
‘이런 갈등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범사에 감사하란 말인가요?
알려주세요!’


극도의 갈등이 계속될 때마다
난 언제나 발전이든 퇴보든 양단간에 결단을 내야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난 스스로 강해지는 길을 택했다.
가슴속에 날카롭게 날을 세운 칼을 품고
극도의 갈등 속에서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갔다.
스스로 품은 칼날에 베이고 아팠지만
그래도 그 칼날은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굳은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누구도 못 말리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겉으론 온순한 듯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 세치 혀 밑에 숨겨둔 날카로운 칼날을 꺼내 있는 힘껏 휘두르면,
세상없는 천하장사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나는 직선적이고 지나치게 논리적인 말로써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궁지로 몰아넣는 아주 잔인한 구석이 있었다.


이 칼날에 가장 많이 베이고 다친 사람은 당연히 가족들이다.
자라는 동안 알게 모르게 내게 상처를 주었던 부모님께
난 가슴에 비수가 되는 몇 마디 말로
그동안 받은 상처를 단칼에 다 돌려 드리고도 남을 만큼 큰 죄를 지었다.
이런 나를 좋아해주고 사랑해 준 한 남자에게도.
그를 사랑했고 결혼을 했으나
그 또한 나의 칼날에 베여 많이 아팠으리라.
남편이 이런 나를 견디지 못하고 튕겨져 나갈 무렵,
고맙게도 명상을 만났다.


이혼을 하고 명상을 시작할 무렵 객관적으로 난 너무도 외로웠다.
내 곁엔 부모도, 남편도….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감사라고는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갈등 속에 점철되어 온 내 삶이건만,
가슴 깊이 품은 칼날이 스스로도 아파
날마다 미친 듯이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라니….


고통은 마치 나를 한없이 나아가도록
곁에서 끝없이 채근하는 수석 코치마냥 내 곁을 맴돌았다.
덕분에 나는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내 허물들을
아주 자세히 현미경 배율로 확대하여
대형 스크린에 공공연히 비춰보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난 밑바닥의 편안함을 제대로 알게 되었고,
실로 그 공부는 내게 말할 수 없는
편안함과 자유를 선물로 되돌려주었다.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 같다.


이제야 깨닫게 된 한 가지 사실은,
고마움은 삶 속에서 뜻하지 않게 주어지는
선물에 대한 ‘결과’로서 일으켜지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마움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삶의 태도 중 하나이며,
스스로의 삶을 보다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여덟 살, 순수했던 어린 소녀가
장차 그렇게 무서운 비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되리란
사실이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성탄 전야에 찾아 온 그 이상한 성경 구절은
말하자면 소녀가 자신의 칼날에 다칠세라 염려하신 하늘이
미리 알고 예비해 두셨던 치유의 선물이 되었듯이.
그 사실을 깊이 깨닫고 나서야 난 비로소
‘범사에 감사하라’는 오래된 성서의 가르침에 순순히 ‘예’하게 되었다.
여덟 살 성탄 전야에 드린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가 이제야 이루어 진 모양이다.


하늘은 늘 세상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연주하시는 음악가처럼
내 영혼을 어루만지신다.
그 섬세한 손길에 온전히 나를 맡길 수만 있다면
왠지 오늘은 지금 당장이라도,
온 우주를 통해 울려 퍼지는 조화로운 천상의 선율을
운 좋게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어둡고 둔한 나의 귀를 비비고 크게 키워 조심스레 귀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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