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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편지 | 박하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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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useonjae 작성일2014-11-11 08:23 조회1,1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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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아침 8시 15분. 오늘도 조금 일찍 도착해 출근 도장을 찍는다.
바다를 낀 시골 마을. 노인들이 많아서 마을 청년회의 평균 연령이 60~70대인,
시내에서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면 보건지소가 나의 일터이다.
늘 근무시간보다 훨씬 일찍 오지만 도착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할머니 천천히 오셔도 돼요. 이렇게 추운데 떨고 계시면 어떡해요.”
괜히 마음에 찔려서 할머니께 심술이다. 그러면 늘 한결같이 같은 대답.
“그래, 내 다음부턴 늦게 오께. 도통 늙으면 새벽에 잠이 있어야 말이제.”
도리어 미안해하시며 주름으로 얼굴 가득 채우시며 웃으신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담는 그릇이 넓어져서인지 모두 서로가 많이 닮으셨다.
심지어 할머니와 할아버지, 성에 상관없이 얼굴은 닮으신 것 같다.^^


발령 받은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제 겨우 매달 약 타러 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과 이름을 대충 외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 어르신들이 무척 싫어하시는 것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하나는 병원 가야 하니 자녀들에게 연락하라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당신 이름을 여쭙는 것이다.
자주 오는 당신을 기억 못하시는 것을 참 섭섭해 하신다.
연세가 드시면 '섭섭 바이러스’에 더 잘 감염된다고 했던가?

처음엔 뭐 그런 걸로 화내시나 의아했었다.
'1:익명의 다수'라는 극히 개인적인 마인드가 몸에 베여 있고
‘타인에 대한 관심 결핍증’까지 앓고 있으니 죄책감은 거의 없었다.
그저 대면하는 순간 친절하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다보니 명절 때나 보는 자식보다
더 자주 보는 사람이 이름 하나쯤은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몇 번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실망하시는 것을 본 후부터는
잘 기억나지 않으면 일단 최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며 시간을 끄는 잔머리가 생겼다.^^;

이렇게 보건지소 주변 몇 개 마을에서 찾아오시는 어른들을 만나게 되고
혼자 계시는 독거노인 분들을 방문하면서 유독 마음이 쓰이는 몇 분이 생기게 되었다.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단지 병이 중하다거나 혼자 사신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지구에 태어나 사는 사람치고 사연이 없고 한이 없는 분들이 계시겠느냐만
그 중 몇 분들은 살아온 삶을 단지 비관이나 후회만으로 살고 계시지는 않으시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중 한분이 강 할아버지다.

처음 이분을 선임자로부터 인계를 받고 집을 방문 했을 때가 기억난다.
집 주소를 보고 찾아 갔을 때 여느 독거노인의 집과 달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두 내외분만 사신다고 들었는데….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신식 이층 벽돌집이었다.
한눈에 봐도 가족이 함께 사는 마을 이장이나 유지의 집쯤으로 보였다.
현관문을 두드리자 중년의 남자가 나왔다.

“강00님 계십니까? 방문 진료 왔는데요.” 무심히 듣더니 손끝으로 담벼락 쪽을 가리켰다.
"저쪽 문으로 가보세요.”라고 하고는 쌩~들어간다.
가리킨 곳을 보니 옛날 집에 있던 행랑채 비슷한 곳을 판자로 덴 문이 보였다.
‘담배’라고 적힌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 형광등이 없어 한낮에도 어둡고 추운 부엌이 나왔다.
조금 더 들어가니 창문만한 방문이 보였다.
아마 담배를 떼다 파시며 생활을 이어가시는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를 몇 번 부르자 방문이 열리면서 누워계신 하얀 할아버지 얼굴이 보였다.
눈은 백내장으로 많이 상하셨지만 정신은 맑으셨고 말도 또박또박 하셨다.
머리 위에는 조금 전에 보던 신문이 놓여 있었다.
방문 진료 왔다니 연신 반가워하시며 못 일어나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연탄을 쓰는 방이었지만 다행히 따뜻했다.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혈압을 재드리러 방으로 들어가기를 시도했다.
작은 문으로 최대한 웅크리고 들어갔는데 금방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방이 너무 좁아 내가 들어가 앉으면 두 분이 누워 계실 수 없게 되어서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시다가 얼마 전 어두운 부엌에서 넘어져 얼굴을 다치셨다고 한다.
얼굴엔 반창고를 크게 붙이셨지만 너무 선하신 얼굴이다.
혈압하고 당뇨 수치가 정상이라는 말 한마디에 다시 함박웃음이시다.
방 입구에서 할아버지 팔만 빌려 혈압을 어정쩡한 자세로 재어 드렸다.
이 모습이 재미있으셨는지 할머니가 연신 방긋하시며 까만 봉지를 주섬주섬 주신다.

“담배만 팔아서 줄건 없어.
한 달에 한 번 보건소 처자들 오면 줄려고 전에 영감이 따로 담아뒀지.” 하신다.
“할머니 뭔지 몰라도 안 주셔도 되요. 다음 달에 또 찾아올게요….”
하며 나오려는데 할머니가 입구에 누워계시는 할아버지 옆구리를 찌르시며
어서 건네주라며 성화시다.
어둡고 고통스러워하는 다른 분들을 뵙다가
외롭고 힘든 내색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두 분의 온화한 모습이
그날 내내 참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지내시며 저런 웃음을 지으시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 후 그 마을 담당 자원 봉사자에게 강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큰집에 살던 중년 남자는 양아들이고 다른 자녀는 없으셨다.
살림은 부족하지 않게 사셨는데
할아버지가 월남 전쟁 때 다리를 다치셔서 못 걸으시게 되면서
행랑채로 내려오시게 되셨다고 한다.

거두어 키운 양아들이 이젠 노부부를 모른 체 한다고 마을에서도 꽤 미움을 받는 모양이었다.
정작 할아버지 할머니는 끝까지 아들에게 짐이 안 되려고
판자로 만든 행랑채에서 조금씩 담배를 팔아 생활하시고 계신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런 상황이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양아들을 원망할 텐데
강 할아버지 부부는 오히려 그것을 감사의 대상으로 여기신다.
그렇게라도 아들이 자신들을 버리지 않고 옆에 살아줘서 든든하고,
간간이 담배를 팔아 그 나이에도 용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부러울 것 없이 사신다고 했다.


엔도르핀이 다량 분비되는 '감사'. 우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간의 감정인 '감사'.
어쩌면 감사하는 마음이란 좋은 일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곳에 더욱 요긴하게 쓰라고 주신 조물주님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연세가 80이 넘으시고 고혈압에 걷지도 못하시지만
맑은 정신으로 정정하게 사시는 비결을 알 것도 같았다.

그날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야무지게 묶인 까만 봉지를 열어보니….
박하사탕이다.
아랫목에서 마음 놓고 몸을 녹여서인지 엉겨 붙어 있다.
나는 한 달분 약을 전해 드리고 할아버지께 한 달 치 박하사탕을 처방받았다.
하나 떼서 입에 넣으니 싸하고 달콤한 박하향에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김혜정(1980년생, 보건소 간호사)
2005년 명상입문
6년차 된 간호사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프신 어머니와 할머니를 보아서인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사는 이유, 죽는 이유, 사사롭게는 살며 겪는 다양한
일에 대한 궁금증이 무척 커졌을 때 명상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명상 학교에서 제가 궁금하게 여기던 것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명상을 통해 배운 ‘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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